[Essay] 새해를 맞아

권성훈lFebruary 10, 2013l Hit 5250


(글)

바이넬 게시판이 만들어 졌다.  학생 때부터 이병호 교수님 게시판의 글을 즐겨 읽곤 했는데, 드디어 바이넬에도 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겼구나.  좋긴 한데... 불행히도 여러분의 지도교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읽는 것은 좋아한다. 이 게시판이 여러분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장이 되길 기원한다. 특정 멤버의 글을 수년 팔로우 해서 읽어보면 어떻게 그 멤버가 성장해왔는지 볼 수 있는, 그런 솔직함이 있는 게시판이면 좋겠다.

사실 글이라는 것은 여러 통신 매체 중에 가장 기능이 떨어지는 매체다.  대화를 할 때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 상대방의 눈빛, 에너지, 톤, 표정 이런 것이 다 없고 오로지 글자만 있는 재미없는 매체이다. 그만큼 쓰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고, 그래서 내가 글쓰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내 머리속엔 사차원적으로 (이상하게 생각지 말것) 지난 경험과 생각들이 모두 결합되어 있는 그런 사항들을, 이렇게 일차원 적인 매체에 의존해서 전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나보다.  이런 성능이 떨어지는 매체로 자신을 표현하려면 그만큼 전하려는 바가 정립이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쓰는 논문과 같은 과학적인 글에서 논리가 없으면 전달이 힘들듯이 말이다.

하지만 글에는 다른 매체가 가지지 못한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 신기하게도 읽는 사람마다 전부 저 마다의 것을 상상하며 생각하며 읽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본 해리포터 영화는 모두 한가지 이미지 이겠지만, 책으로 봤다면 독자들이 그리는 세계는 제각각 일거다. 소설을 읽어도 읽는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상상을 하게 되고, 이것은 영화나 티비를 봐서 그리게 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것들이 글의 묘미 인 것 같다.  

(연구의 재미)

연구실의 게시판에 처음 쓰는 글이니 오늘은 연구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바로 연구의 재미이다!  

연구는 정말 재미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 지도교수가 다른 재미들을 몰라서 연구가 재미있다고 하나 생각진 마라. 내가 정말 재미있는 것들을 좋아해서, 취미도 많고 취미 이상으로 중독되어 미쳤던 것들도 많았다. 돌아보면 내가 당구를 배울 때 정말 미쳐서 배웠다.  황당하겠지만 48시간 연속으로 내기 당구를 친 적도 있었다. 배우기 전엔 그렇게 지루해 보이던 골프도 맛을 알고 나니, 골프채가 14개인데, 당구보다 14배 재미있더라. 그런데 이런 것들 다 합친 것 보다 연구가 제일로 재미있고 중독성이 심하다.  우리 공학자들은 참 복받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남좋은 일 하면서 세상도 바꾸고, 소중한 친구도 사귀고, 자신도 수양하고, 정말 일석 몇조인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 연구실에 같은 생각을 하는 멤버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먼소리냐 하는 멤버도 있을 거다. 실험을 해도 해도 안되는 거 투성이인데 대체 머가 잼난다는 거냐!  못 믿겠으면 걍 지도 교수를 믿고 재미를 알 때까지 함 해보자.  모든 중독성 있는 것이 그렇듯이 진짜 재미있는 것들은 그 맛을 알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제 대원이에게 스노보드에서 인클라인턴을 하면서 엣지세우고 달리는 맛을 알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한달동안 매일 종일 타면 될것 같다고 하더라.  당구도 테니스도 골프도 스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연구의 재미를 알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연구자들 마다 구체적으로 느끼는 재미는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학생 때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길이 보이지 않아서, 때론 예상치도 못한 결과에 놀라기도, 전혀 예상치 못한 행운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가장 기본적으로는 그냥 배운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포스트닥 때는 무언가 연구의 결과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을 더 볼 수 있게 되서, 단순히 내가 배우고 내 지적 재산이 늘어나는 것 이외에, 연구의 결과로서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들이 좋았다.  교수가 되고 나서, 그 재미가 몇 배가 되었는데, 이유는 배우는 것도 임팩트를 보는 것도 모두 빨라 졌기 때문이다. 빨라진 이유는 혼자가 아닌 우리들이 여러분들이 같이 연구하고 서로 공유하니, 배울 것이 더 많고, 결과를 보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의 재미는 주관적으로 내가 현재 느끼는 것이고 다른 많은 재미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모두 연구의 재미를 알기를 원한다. 멤버들 마다 느끼는 재미는 다 다를 것이다. 남에게 인정받는 재미가 주요한 멤버가 있는가 하면, 도저히 안되던 것들이 풀릴 때의 쾌감에 중독된 멤버도 있을 거다.  재미가 각각이 느끼는 다른 재미이면 공유하자.  그런데 문제는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이런 연구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기 전에 좌절한다는 것이다.  지도교수로서 내가 할일은 일단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인 것 같다.  일단 재미를 느끼면 고기 잡는 법을 배운 것이라 그 다음은 자동이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여러분들은 연구할 거다. 어쩌면 조그만 성취를 단계적으로 하게 해서 조금씩 큰 성취를 해나가게 만들면서 재미를 더 쉽게 느끼게 유도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글쎄.. 그런데 나는 직설적인 사람인 지라 그냥 여러분에게 사실을 말해줌으로서 연구의 재미를 알게 하고 싶다.

연구의 재미를 알 때까지 갈려면, 연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일단 연구는 쉬운 것이 아니다. 공부와 연구는 매우 틀리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연구를 하면서 나가 떨어 지는 것이 어쩌면 연구랑 공부를 동일 시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연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인류의 지적 재산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인데 쉬울 수가 있겠나?   연구는 인류의 지적인 경계(Human knowledge boundry)를 넓히기 위한 전쟁이다. 그런 Bleeding edge에 우리가 서있다. 이런 것이 쉬울수가 있나?  쉽지 않다는 것을 매력으로 받아들여라.  야구에서는 삼할대 타자면 최고의 타자이다.  연구에서는 일할만 되도 최고의 연구자라고 단언 할 수 있다.  즉 일년 삼백육십오일 중에 삼백삼십일은 실패하는 것이 연구다.  항상 잘 안되는 것이 실험이다.  이것을 받아들여서 일단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여 재미를 느낄 때 까지 못 버티진 말자. 버텨야 된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할때 일수록 중요한 것이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가지 태도들이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데.. 일단 멘탈이 강해야 한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여러분들이 하는 실험이 실패하고 안될때 씨익 웃으면서 ‘그래? 이렇단 말이지? 두고 보자, 나중에 되기만 하면 내가 몇배로 뿌듯해 줄테다’ 이런 생각으로 차곡 차곡 투자한 후에.. 나중에 성공했을 때 전부 return 받자. 안되면 안될수록 더 투지가 생기는 그런 강한 멘탈을 길러보자.

또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태도이다.  여러분들은 매우 똑똑해서 무언가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면, 실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안될 열가지 이유를 찾아버리고, 하나라도 찾아지는 즉시 실험을 멈출 수 있다.  이런 경우 실험은 할 필요가 없이 실패다. 반드시 해낼수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로, 아홉 번 실패해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를 가지고 해보는 태도다.  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거리낌을 없애기 위해 해야 하는 이유를 정말 깊이 생각하자.  우리는 단순히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래도 저래도 재미를 못 느낀다면, 대체 못믿겠다 하다면, 내가 제안할 수 있는 특효약이 있다.  아주 쉬운 일이다. 내가 연구 체질인가 적성에 맞나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일단 몸으로 때우는 방법이다.  일주일에 백시간이상 노력해봐라.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일만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나온다. 하루에 세시간씩 십년을 하면 만시간을 채워서 한 분야에 대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일주일에 백시간이면 정통하는 데 단이년이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하는 일에 대해 애착이 없었더라도, 자신의 시간과 인생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백시간씩 본인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한 것에 대해 미운정이라도 쌓일 것이다.  같이 했다면 서로를 인정하는 소중한 친구도 얻을 수 있다.  무식한 말로 여러분들을 새해부터 질리게 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왜 내가 백시간 이야기 하는 지 여러분들에게 많은 이유를 공유할 기회가 있을 거다.

이렇게 한해 두해 해보면, 또는 운좋은 사람들은 시작하자마자 연구의 재미를 알게 된다.  연구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 여러분들은 연구의 길을 선택한 것이 참 행복할 것이다.  새해에는 모두 더욱 즐겁게 신나게 같이 연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