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ke Mycoskie
탐스 CEO
'신발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창업가 중 한사람으로 Blake Mycoskie를 뽑은 이유는 이윤 창출과 동시에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문화의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는 탐스의 CEO로 매우 젊은 창업가 이기 때문입니다.
Blake는 어릴적부터 줄곧 창업을 해온 매우 도전적인 사람이었는데 세번째 창업이었던 온라인 운전 사업이 매우 잘되고 있었지만 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과감하게 아르헨티나로 떠났고 거기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신발을 나누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며칠 동안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Blake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신발이 없는 아이들은 맨발로 다니다가 발에 상처도 많이나고 감염도 되곤 했습니다.) 이에 하나의 신발을 사면 하나를 기부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Blake는 'Tomorrow's Shoes'라는 의미를 지닌 TOMS 아이템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잘되가고 있던 세번째 창업 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TOMS에 매진하지 못했고 수익률은 지지부진 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인터뷰가 실리게 되면서 그의 스토리에 감동한 소비자들로 인해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고 지금도 충성도 높은 고객들로 인해 끊이없이 홍보가 되며 매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TOMS는 일종의 트랜드로 다양한 소비자층에서 소비되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의 사회기부에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행를 떠나서 본 사회 문제를 그저 지나치지 않고 수익과 기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창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Blake가 저의 가장 좋아하는 창업자 중 하나입니다.
MiKael Hed
로비오 (앵그리버드) CEO
사실처음 로비오의 시작은 작은 게임 하청업체였습니다. Mikael Hed의 동생인 니콜라스가 게임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서 HP의 지원을 받아 설립했죠. EA나 NAMCO 같은 대기업의 하청업무를 맞으며 수익을 냈지만 Mikael은 수입구조에 많은 불안감을 느꼈고 자신들만의 컨텐츠를 만들고자 하였지만 내부 갈등으로 기업을 떠나고 출판회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Mikael이 떠나있는 동안 로비오는 2년만에 파산 직전까지 가게 되고 결국 회사는 Mikael을 다시 불러오게 됩니다. CEO가 된 Mikael은 '앱스토어'의 출현으로 인한 시장의 흐름을 보고 Mikael은 아이폰 사용자들의 특성을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터치기술을 효과적으로 써야하며, 굳이 메뉴얼을 보지 않아도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게임이어야 하고 심지어는 PC나 엔터테이먼트 사업까지 확장 가능하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죠. 그러던 중 디자이너가 그린 앵그리버드를 보고 그 이미지를 토대로 삼아 앵그리버드가 어떤 이유로 앵그리하게 되었는가? 란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9개월에 걸쳐 '앵그리버드' 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Mikael은 처음부터 영어권뿐만이 아닌 북,동유럽권부터 점령하기로 마음을 먹고 핀란드에서 인기를 얻은 후 영국 시장으로 진출하였습니다. 입소문을 탄 앵그리버드는 영국, 미국을 거쳐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됩니다. 이제 앵그리버드는 게임을 넘어서 대형 엔터테이먼트 사업으로 자리매깁하였습니다. 앵그리버드는 로비오사의 52번째 게임으로 앵그리버드 이전에 51개의 게임이 있었습니다. 51개의 실패가 있었지만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치밀한 시장진입 계획으로 대형 엔터테이먼트 회사로 로비오를 키워냈다는 점에서 Mikael Hed는 저의 가장 좋아하는 창업가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최영호
Access Bio CEO
최영호 CEO는 개척교회 목사의 장남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수료한 후에 고려대학교 농생물 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아버님이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분이였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직후였다. 한창 강남 개발 붐이 일던 시절인데 논밭 밖에 없던 방화동에 개척 교회를 세웠다. 자녀 교육비로 모아뒀던 돈을 모두 헌금하셨다. 혼자 공부해서 검정고시로 대학가라고 하셨다."
이렇게 힘겹게 공부하던 최영호 CEO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소에서 미국으로 잠시 출장을 갔을 때, 진단 시약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강제모 박사를 만나게 되고, 후에 그가 회사를 창업한다는 말에 망설임없이 미국행을 떠나게 됩니다. 강제모 박사가 설립한 PBM이라는 회사는 미국 진단시약 업계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이 회사에서 13년간 근무한 최영호 CEO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회사인 Access Bio를 설립하게 됩니다. 설립할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3억원이 안되는 돈으로 시작하여 이후 쯔쯔가무시 병 진단 시약 기술, 뎅기열 진단 시약 개발 등으로 총 30억원 가까이 되는 돈을 기술력만으로 펀딩 받게됩니다. 이후 Access Bio는 말라리아 진단 시약으로 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고 WHO 입찰에도 성공하면서 말라리아 진단 시약의 대표적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저는 평탄하지 않은 어린 시적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에 입학, 미국에서 만난 강제모 박사를 따라 망설임없이 미국행을 떠난 것, 13년동안 다닌 회사를 나와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점 등을 통해 최영호 CEO가 국내 기업가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창업가가 되었습니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