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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모소대나무 이야기

송서우lAugust 6, 2020l Hit 1696


누군가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 받았 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모소대나무라는 식물 이야기이다. 이 모소대나무라는 놈은 아무리 농부들이 정성을 다해 키워도, 4년이 지나도 3cm 밖에 자라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통 5년 정도 되는 날부터, 하루에 30cm씩 자란다고 한다. 그리하여 6주만에 15m를 자라서 대나무 숲을 이룬다. 성장의 원리는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4년동안 겉으로 거의 자라지 않는 동안 땅속으로만 자란다고 한다. 뿌리를 계속 깊이 내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땅 위로 그대로 자라나는 것. 그러니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고, 당신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음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런 모소대나무의 특징은 PhD Tree 내지는 PhD Bamboo고 불릴 만큼이나 그 생육이 박사과정과 꼭 닮아 있다. 우선 박사과정 자체가 누가 잘 하고 못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결과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결국 학위를 따고 세상에 나갔을때, 세상이 알아주는 가치는 남들이 알아보지 않는 박사학위 기간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에 상당한 연관이 있다.



좋은 글입니다만,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내실을 다지는 시간의 끝'을 학위를 받고 졸업을 하는 순간으로 여기는 일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학위를 받고 졸업만 하고 나면 세상이 박사학위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긴 터널이 박사과정을 받는순간 끝난다! 라는 맥락의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박사를 졸업하고 느낀 상황은 조금 다른것 같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박사학위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도 하고, 학계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 소위 '인사적체', '학력인플레' 등이 심해지고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지금 저의 단계 역시 아직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기도 하구요. 열심히 성장을 하다보면 결국은 어느샌가 나도 모르는새에 '15m나 자라버린 모소대나무'가 될 수 있겠지만, 예전에는 '박사 졸업 시점'이었던 그 시기는 점차 늦어지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든 학위과정을 견디며 졸업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앞이 막막해지는 소리로 들릴수도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내실을 다지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그 전과 크게 달라진것이 있다고 생각들지 않고, 졸업 후 직장을 가진 선배님들을 봐도 또 항상 그 다음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돌아와서 다시 생각을 해보면, '모소대나무는 몇년간 겉으론 드러나지 않아도 혼자 그 모진 고생을 하고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 역시 '외부에서 바라본 시각' 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모소대나무 본인 입장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자라나던 아니던, 혼자서 자기 몸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 과정이 즐거웠을수도 있지요. 행복한 모소대나무에게는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 길고 지루한 기간이 아니라, 즐겁고 재미났던 어린시절의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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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진
    정윤진
    2020-08-06 17:50:26
    재밌네요 ㅎㅎ 누군가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같이 들었(?) 받았었는데, 이렇게는 생각 못했었거든요. 말씀해주셨듯이 모소대나무의 행복은 남이 보았을 때의 시점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모소대나무 안에서 찾아야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내실을 다지는 과정들을 즐겁고 재미났떤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만들 수 있는건, 연구의 즐거움을 얼마나 찾았느냐에 달려있을 것 같네요.
    교수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다싶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생산성이 Exponential 하게 증가할텐데, 그 어떤 순간이든 간에 지금 즐기지 못하면 지나고 보았을 때 과거는 항상 내실을 다지는 순간들이겠네요. 그렇기에 항상 교수님과 선배님들이 현실에서 이룬 성과와 무관하게 그 다음 목표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 같고요.
    성과를 맛보는 것보다 내실을 다지며 앞으로 전진하는 행위 자체와 Inside에서의 잘 보이지 않는 성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우리가 갖춰야할 최우선적인 자세일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수민
    이수민
    2020-08-12 08:18:49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이네요. 같은 것을 접하더라도 감상이 다른 것은 그 과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겠죠. 외부의 measurement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때때로 몹시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남필
    김남필
    2020-08-13 15:39:05
    전해들은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에 대한 해석이 엄청 신선한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은 박사과정을 완료하는 시점과 굉장히 멀리있지만, 이 글 덕분에 일찍부터 졸업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연구 자체를 즐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충원
    이충원
    2020-08-18 17:23:24
    내실을 다지는 시기를 싫어하고 겉멋만 들었던 제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우석
    이우석
    2020-09-01 15:30:16
    프로가 되기까지 과정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글입니다.  서장훈씨는 청춘페스티벌2017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즐겨서 뭘 이뤄낼 수 있는 건 단연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 완전 뻥이예요." 이것을 보면 누군가는 뒤를 돌아보면서 즐거웠다고 생각하는 반면 또다른 누군가는 그 순간들이 괴롭고 해방되고 싶던 순간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순수하게 즐겁거나 괴로울 때가 있을까요? 결국에는 본인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모소대나무 자기자신의 시선이 중요하겠죠.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너는 이 길을 즐겁게 걸어가겠냐 아니면 고통스러워 하면서 걸어가겠냐'라며 묻는다면, 저는 주저 않고 즐겁게 걸어가겠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인생은 각자 단 한번 뿐이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뿌듯하고 후회가 크게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 살아가다가 앞을 바라보았을 땐, 좀더 즐거움이 커져가는 순간들을 맞이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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