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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분류의 불쾌함

이용희lAugust 27, 2020l Hit 2068


요즘 MBTI 분석과 그에 따른 사람 분류가 유행인 것 같다. 친구들끼리 서로의 MBTI 유형을 예측해보고 맞추는 걸 하기도 하고, 친구 간, 연인 간, 심지어 직장 내 선후배 간 관계 양상을 MBTI 유형의 조합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표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현상이 마냥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분류하는 걸 좋아한다. 아니 거의 본능적으로 수행하는 일인 것 같다. 다양한 개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떤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개체들을 여러 군집으로 분류한다.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에게서는 이러한 분류 작업이 필수적이다. 실험/분석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분류하고 각 데이터를 대표하는 특성을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류작업을 사람에게 적용하는게 나는 거부감이 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판단, 행동하는 것에 대해 크고 작은 불쾌한 경험들이 생각난다. 서울대라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게 있으면 바보 취급 받았던 군대 때도 있었고, 군필이라는 이유로 사회성 없는 꼰대 아저씨 취급을 받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꼰대스러움이 있긴 하다). 더 어렸을 때에는 남자라는 이유로 슬픈 영화나 드라마 보고 우는 걸로 많이 혼나기도 했다.

사람이 분류되는 것이 무섭고 기분 나쁜 이유는, 남들이 그 분류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지만 감정이 풍부하기도 하고 서울대 출신이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기도 하며 꼰대스럽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어떤 기준, 그 하나로 분류하고 나서는 그 분류만으로 나의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고 나는 꼼짝없이 그 잣대만으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분류하고 나면 해당 기준으로 그에 대한 모든 걸 판단하게 된다. 사람을 단일 또는 소수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태도는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방해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니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분류된 사람에게 이 상황이 불쾌하게, 심지어는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세상에 동일한 외모를 지닌 사람은 쌍둥이를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외모도 그럴텐데 각자가 가진 성격, 특성도 모두 다른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걸 잊지 말고, 사람을 간단히 분류해서 잘못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Comment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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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충원
    이충원
    2020-08-27 16:48:35
    좋은 글 감사합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일화가 그리스로마신화에 있죠, 침대길이보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순간 상대방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오만함이 자라게 되는것같아요. 그럴때마다 이런 경각심이 오만함을 반성하게 해야 또 사람들과함께 할 수 있는 것같습니다.

  • 이우석
    이우석
    2020-09-01 15:35:22
    말콤 글래드웰의 신간 "타인의 해석"에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아직도 어머니에게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놀라시는데, 몇십 년을 같이 지낸 시간도 완벽한 이해를 이룰 수는 없나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아마 평생토록 타인과의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늘리는 데에 힘써야만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정윤진
    정윤진
    2020-09-02 16:35:09
    거시적인 관점에서 어떤 현상을 이해하거나 예측할 때, 결국 데이터를 정보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어도 분류를 해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개인은 결코 이 분류에 적합하게 들어갈 수 없고 항상 아웃라이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먼 타인이 아닌, 가까운 내 사람일 수록 더욱 이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도 규정되지 않음을 인지하는 거죠. 우석이 아버지께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 발견하시는 것처럼요. 사실 언어도 이런 분류의 한계 같은 상황에 일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스키모인은 눈을 정말 많은 단어로 정의해서 보다 넓고 차이나게 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비슷하게 분류해버리게 되는 것 처럼요. 주변 사람이란 언어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자유도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선입견을 벗어 던지는데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정윤진
    정윤진
    2020-09-02 16:35:11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연구 데이터에서도 이렇게 분류하되, 동시에 열린 눈으로 보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항상 조언하시는대로 분석장비 앞에서 한참을 앉아있다보면, 내 가설에서의 예상과 이전의 분류 때문에 보지 못했던 해석들을 뒤늦게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연구에서조차 분류하는 태도와 분류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가 중요할 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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