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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따뜻한 기술에 대한 소견

신기영lSeptember 11, 2020l Hit 1439


따뜻한 기술이란 사람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 목적 (사람들 전반의 생활여건 향상 및 사회문제 해결)의 응용, 상용화 단계의 기술로 정의될 수 있다.

우리 BiNEL 멤버들을 비롯해 모든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이런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연구하는 일이 따뜻한 기술을 구현하고자 한다고 자각해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따뜻한 기술은 ‘따뜻한’이란 형용사와 차가운 이미지를 가지는 ‘기술’이 결합된 마치 형용모순처럼 느껴졌고 딱히 거창하게 그러한 용어를 써야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해서이다.

최근 하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이런 ‘따뜻한 기술’이라는 용어를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먼저 매우 인상적이었던 광고를 하나 짧게 소개해 본다.

김소희씨는 태어날 때부터 청력을 잃어 말을 할 수 없었던 선천성 청각장애인이다. 본인의 목소리를 듣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지도 못했던 그녀의 가장 큰 소원은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먼저 김소희씨의 목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그녀의 가족들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이어 김소희씨와 동년배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석하고 그녀의 구강구조를 파악해 목소리를 추론해 나갔고 AI 음성합성 기술을 통해 김소희씨 만의 목소리가 완성되었다.

TV 광고에서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김소희씨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가족의 반응과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김소희씨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TV 광고는 KT의 사회공헌 캠페인으로 ‘제 이름은 김소희입니다’ 였다. KT는 ‘마음을 담다’ 라고 명명한 이 캠페인을 통해 따뜻한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의 관점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현해 나가겠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들의 노하우를 매우 적절하게 공익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나는 우연한 계기로 이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면서 바로 ‘따뜻한 기술’이라는 개념에 대해 체감하게 되었다. KT는 이 광고를 시작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청각을 잃었거나, 여러 사유로 목소리를 잃은 분들을 신규 모집하였다. 운 좋게 이 캠페인에 선정되어 KT의 구현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구현될 날을 기다렸다. 목소리를 잃은 이에게 자신 만의 목소리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점과 그 대상자가 더욱이 가족이라면 ‘따뜻한 기술’이라는 말이 형용모순이라 하더라도 그 말이 먹먹하게 내 가슴에 와닿던 것이 사실이었다.

목소리가 구현되는 방법은 먼저 가족 구성원의 목소리를 녹음하게 된다. 구현 대상자가 남성이라면, 아빠, 형제, 아들 등의 목소리를 녹음하게 되고 대상자가 여성이라면, 엄마, 자매, 딸 등의 목소리를 녹음하게 된다. 이후, 성별, 나이, 구강구조 등 개인 특성을 반영해 정교화를 시키는 목소리 튜닝 과정을 거쳐 KT의 AI 기반 반복학습을 통해 목소리를 생성한다. 이렇게 구현된 목소리는 모바일 앱을 통해 제공하게 된다.

목소리가 구현되던 날, 따뜻한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다소 실망감으로 바뀐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시점에서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은 기존 상용화된 앱을 사용하고 있다. 그 앱의 목소리가 천편일률적이거나 다소 기계음에 가깝기 때문에 KT가 차별화한 대상자 자신의 목소리를 구현하겠다는 점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구현된 목소리는 튜닝이 많이 되어 기존 상용화된 앱의 기계음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때, 나는 ‘따뜻한 기술’이 되기 위한 조건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 몇 가지 조건을 나열해 본다.

첫째, 개발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이기에 완성도가 매우 중요할거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KT의 목소리 구현 기술은 선한의지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거 같다. KT의 목소리 튜닝은 목소리 녹음을 누가, 어떻게 발음하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연령이 다를 경우, 튜닝을 많이 하게 된다. 또한, 자연스러운 발음이 아닌 국어책 읽기 방식의 녹음이면 기계음과 가깝게 되는 것 같다. 따라서, 기존 상용화된 앱과 비교해서 비약적인 개선이 없었던 점이 내가 실망한 부분인 거 같다.

둘째, 대상자가 조금 더 상용할 수 있는 개발자의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997년 무선호출기(삐삐) 시대와 개인 무선핸드폰 시대 사이에 시티폰이 출시된 적이 있다. 삐삐를 활용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공중전화와 같은 발신장치였다. 그렇지만 삐삐 시대에 긴 줄이 인상적인 공중전화박스의 풍경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 발신장치로 시티폰이 개발되었다. 시티폰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만 있고 받을 수는 없는 발신전용 기기다. 그래서 수신전용이었던 삐삐와는 찰떡궁합이었다. 삐삐로 전화번호를 수신받아 시티폰으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심지어는 삐삐 기능을 갖는 시티폰까지 나와서 바로 호출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가능한 모델도 나왔다. 하지만 시티폰은 그 태생 단계에서부터 공중전화기를 휴대하는 방식이었다. 수신율이 매우 좋지 않았기에 교통수단으로 이동시 통화가 되지 않거나 중계기가 있는 공중전화박스 근처가 아니면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다. 따라서, 시티폰은 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그 해 10월에 나온 무선 송수신기인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신도 가능한 PCS에 비해 전화 발신밖에 안되는 시티폰은 요금 이외에는 메리트가 없었다. 비록 혁신적인 기술일지라도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결국 무용지물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개발자의 섬세함이 있어야 할 거 같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 라고 말한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아무리 거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사소한 부분까지 최고의 품격을 지니지 않으면 결코 명작이 될 수 없다” 라며 인터뷰 마다 얘기하곤 했다. 개발자의 만족도가 아닌 대상자의 만족 혹은 상용을 위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섬세한 개발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비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거창하게 따뜻한 기술이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좀 더 완성도가 높은 기술 개발을 위해 섬세함과 통찰력을 가지고 현재 진행되는 연구들을 수행해 보고자 나 자신에 대한 의지를 다져 본다.

Comment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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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진
    정윤진
    2020-09-16 16:03:37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앞서 수민이의 글에서도 이야기 되었듯이, 이루고자 하는 바와 그걸 제대로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분명한 비젼과 무던한 노력 그리고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그렇게 구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된 기술이 다이너마이트 처럼 다른 곳에 쓰이면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주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일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보다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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